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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감상하고, 예술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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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앤레스토랑 2025년 7월호] 핑카 펠라 - 손진호 교수의 와인 PICK

( 손진호 사진 및 자료 제공 와이넬)

돈키호테의 낭만이 어린 라만차, La Mancha
스페인의 ‘라만차’라는 지명은 잘 몰라도 ‘돈키호테’라는 이름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불세출의 유명한 소설 속 주인공 인물인데, 일본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라면 온갖 물건들을 다 파는 양판점 브랜드로 기억할 수도 있겠다. 대항해시대를 이끈 스페인의 영광이 점차 기울며 1588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무적함대가 패하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 무렵인 1605년 미겔 세르반테스는 기사도 소설에 심취해 현실을 잊은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집필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소설이라 하니,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겠지만, 필자는 중세적 신과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펼쳐가는 개인, 인간으로 시선을 돌린 새로운 인물형 돈키호테, 맨몸으로 거대한 현실인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통해 다가올 새로운 시대인 ‘근대’의 발견을 봤다. 그 돈키호테를 키워낸 곳이 라만차 지방이다.

와인산업의 관점에서 볼 때, 스페인 라만차 지방은 돈키호테처럼 두려움 없이 미래를 개척하는 가장 역동적인 산지다. 스페인 와인의 전통과 역사적 출발은 중북부 리오하(Rioja)와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산지에 있지만, 20세기 중후반기에 들어 가장 혁신적으로 발전하는 젊은 와인 산지는 라만차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높은 해발 고도에, 거친 자연 환경과 오래된 포도나무가 있다. 그리고 이곳을 주목하고 찾아온 젊은 양조가들의 열정의 땀방울이 뿌려지고 있다. 이제 21세기는 라만차 와인의 시대다. 필자는 바로 이 라만차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핀카 펠라 와이너리를 찾았다.
 

거친 테루아, 꿈의 테루아, Almansa 핑카 펠라
이달의 와이너리 핀카 펠라 포도밭이 있는 곳은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Madrid)에서 약 320km 떨어진 알바세테(Albacete)도의 알만사(Almansa)시 근처에 있다. 황야와 산지를 꿰뚫고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렸다. 와인 원산지 명칭으로는 Almansa DO에 속하는데, 이 산지는 모두 8개의 소 산지로 구성돼 있고, 핀카 펠라 밭은 그 중 하나인 ‘알페라(Alpera)’ 지구에 있는데, 가장 높은 해발 고도 지역이다. 사실, 알만사 원산지는 행정 구역상으로는 가스티야-라만차 지방에 위치해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동편 지중해에 보다 근접해 있다. 지중해변 도시 발렌시아나 알리칸테에서 서쪽으로 산맥을 타고 올라가면 거리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따라서 기후적으로도 전반적으로는 대륙성 기후 지역이지만,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다소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포도 재배 조건은 매우 혹독하다. 해발 900~1150m 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70~100년 이상 된 덤불 포도나무들이 있다. 대륙성 기후로 여름은 짧고 뜨겁지만, 가을이 가까워지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여름에는 40℃까지 올라가지만, 겨울에는 영하 10℃까지 내려간다. 강수량은 연간 300~400mm로서 매우 건조하다. 또한 낮과 밤의 온도 차이도 매우 크며, 이는 풍부한 향과 산도 균형이 좋은 포도를 얻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와인에 확실한 우아함과 복합미를 부여한다. 토질은 대부분 석회암에 모래 토질이며 유기물이 적어 매우 척박하다. 표피층이 얇으니 포도나무 뿌리는 암반을 뚫고 들어가 광물질을 풍부히 수용한다. 포도나무와 농부들에게 모두 힘들지만, 꿈의 테루아다.

이런 거친 알만사의 중심부, 고원이 펼쳐지고 한때 말과 순례자들이 지나던 옛길에 핀카 펠라가 자리 잡았다. ‘Fella’라는 이름은 고대 언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수 세기 동안 이 언덕을 정성스럽게 가꿔 온 세대들의 ‘땅에 대한 경의'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다. 여러 고대 언어에서 ‘Fella’는 ‘비옥한 땅, 손으로 돌보는 토양, 기억과 약속으로 풍요로운 장소’를 의미한다. 와이너리 로고에 보이는 말은 우아함과 강인함의 상징이다. 펠라는 알만사 지역의 전통과 정신을 담아 말을 회사의 상징으로 선택했다. 이 지역은 수세기 동안 기마 퍼레이드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말은 용기, 전통, 정체성을 상징한다. 대지를 달리는 말처럼, 핀카 펠라의 와인도 강인함, 균형감, 진정성을 담아내고자 한다. 이는 알만사 땅에 대한 경의이자, 그 거칠고 순수한 아름다움에 바치는 헌사다.

[핑카 펠라 CEO 토마쏘 치암폴리]

사랑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이 곳 알페라로!
“사랑이 제 삶을 이끌었습니다. 사람은 포도와 같아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고, 성격을 형성하고 자신을 표현합니다. 저는 항상 단순하고 강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온 농부 집안 출신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저를 둘러싸고 있는 풍요롭고도 깨끗한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운을 뗀 토마쏘는 아직 싹이 트지 않은 80년된 포도나무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렇다. 필자가 만난 현실의 돈키호테는 바로 이 남자, 토마쏘 치암폴리(Tommaso Ciampoli)다. 그가 와인을 처음 접한 것은 4살 때부터 집에서 할아버지의 와인 제조를 도와 주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와인은 모든 가족 행사에서 자랑스럽게 마셨고, 토마쏘는 와인 제조의 모든 과정을 감탄과 주의 깊은 관찰로 지켜봤고, 모든 비밀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후 세월이 흘러 판티니 와인에서 일하던 토마쏘는 출장으로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 지방에 갔다가, 발렌시아 남서쪽에 있는 25헥타르의 100년 된 포도밭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그 순간 저는 가족 전통을 이어갈 때가 됐다고 느꼈고, 할아버지의 말씀이 마음 속으로 울려 퍼지면서 핀카 펠라 프로젝트에 생명을 불어넣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탈리아와는 다른 나라, 다른 포도 품종이었지만, 경험과 가족 전통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품질의 포도가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상황은 치암폴리 가문이 대대로 써 온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울퉁불퉁 옹이진 오래된 관목 포도나무는 템프라니요와 가르나차, 모나스트렐, 베르데호부터 시라, 소비뇽 블랑까지 다양한 토착 토종 및 국제 품종으로 풍미가 가득한 포도를 매우적은 수확량으로 생산한다.

현재 포도밭 규모는 1400여 ha며, 포도밭은 알만사 지역에 있지만, 양조장은 발렌시아 주의 레케나(Requena)에 있다. 핀카 펠라 와이너리는 2021년 판티니 그룹에 인수됐다. 핀카 펠라와 함께 스페인에 진출한 판티니는 리오하나 리베라 델 두에로와 같은 유명 와인 루트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 지역이 가진 잠재력을 읽어 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우수한 와인 생산지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 아울러, 이 칼럼을 쓸 즈음인 2025년 6월에 판티니 그룹이 막 인수한 동일 지역의 부티크 와이너리 ‘벤타 라 베가(Venta la Vega)’와의 시너지를 기대해본다. 거침없는 판티니 그룹의 행보, 그 끝은 어디인가!
 

시음 와인 4종 리뷰

알타도 베르데호
스페인의 대표적인 청포도 품종인 베르데호는 특히 루에다(Rueda) 지역을 비롯한 중부 고산 지대에서 재배하는데, 신선하고 향긋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데 널리 사용된다. 산화를 방지하고 품종 특유의 아로마를 유지하기 위해 포도는 이른 아침에 수확한다. 핀카 펠라 양조팀은 낮은 수확량, 높은 품질의 유기농 포도로 ‘알타도’ 뀌베를 한정 생산하고 있다. 수확한 포도는 저온 13ºC의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후 3개월 동안 매주 저어 주는 미세 앙금 숙성 공정(Bâtonnage Sur Lies)을 통해, 부드러운 질감과 풍미를 더했다. 필자가 시음한 2022 빈티지는 연녹색 뉘앙스가 싱그러운 밝은 황금색을 띠고 있으며, 파인애플, 멜론, 복숭아 등 은은한 열대과일향의 온화함에 레몬, 자몽, 사과의 상큼함이 조화를 이룬 향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깊이 있는 펜넬, 바질 등 허브와 풀잎의 느낌도 올라오고, 약간의 아몬드, 꿀향도 느껴진다. 맛에서는 기분 좋은 상큼한 산도와 쌉쌀한 쓴맛, 부드럽고 미세한 기름진 질감이 미디엄 라이트 보디감과 조화를 이뤄 균형감이 좋다. 추천 음식으로는 채소 샐러드, 해산물(굴, 새우, 조개), 일식 초밥, 세비체, 해산물 빠에야, 가벼운 생선 구이 등과 잘 어울린다. 레이블에서 보이는 고색창연한 느낌의 칼리그래프와 리본 디자인은 다분히 스페인 아르누보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서 느낌이 좋다. 2022 Asia Wine Trophy 금상, 2023 Korea Wine Challenge 은상을 수상했다.

알타도 모나스트렐
스페인 토착 적포도 품종 모나스트렐은 강렬하고 구조감 있는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지중해 지역 대표 품종이다. 프랑스에서 ‘무르베드르(Mourvèdre)’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 동부 지역, 특히 발렌시아 근처의 후미야(Jumilla), 예클라(Yecla), 알만사(Almansa) 등지의 대표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껍질이 두껍고 타닌이 풍부해 진한 색상의 농축된 과일 맛을 표현한다. 뀌베 이름 알타도는 '고지대' 라는 뜻으로, 해발 1000m 밭의 포도를 사용했다는 의미다. 유기농 재배한 모나스트렐 100% 와인이다. 8일 동안 26°C의 온도에서 침용 과정을 진행하며, 300L 프랑스 오크통(새 오크 비율 15%)에서 6개월간 숙성했다. 필자가 시음한 2021 빈티지는 빈티지는 영롱한 루비 레드 색상에, 농익은 검은 체리, 자두, 약간 달큰한 캔디류의 터치가 있고, 오크 숙성에서 받은 은은한 삼나무와 연필심, 바닐라향이 저변에 깔려 있다. 입에서는 매끈한 질
감과 풍부한 타닌의 대비가 인상적이며, 충분한 산미 덕분에 알코올 15%vol이라는 수치가 믿기지 않을 만큼 우아하고 세련된 무게감을 경험할 수 있다. 추천 음식으로는 생고기 구이, 라구 크림 파스타, 스페인 초리소 소시지, 피자가 잘 맞으며, 여름에 마실 때는 와인 온도를 16°C 정도로 시원하게 칠링해 마시길 권한다. 2024 Korea Wine Challenge 은상, 2023 Korea Wine Challenge 금상(2021빈티지), 2022 뉴질랜드국제와인쇼 동메달을 수상했다.

 

깔라 레이 템프라니요 시라
최근에 핀카 펠라의 포트폴리오에 추가된 입문급 3종은, 레드, 로제, 화이트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성비가 좋고 마시기 쉬운 와인으로, 예산에 민감한 와인 애호가들에게 추천할 만한 와인이다. 화이트 와인은 베르데호 70% 에 소비뇽 블랑 30%, 로제는 템프라니요 100%이며, 레드 와인은 템프라니요 80%에 시라 20%가 블렌딩됐다. 뀌베명 ‘Cala’는 스페인어로 ‘작은 만 또는 작은 해변’을 의미한다. 흔히 바닷가의 아담한 만이나 해변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다. ‘Rey’는 ‘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Cala Rey’는 직역하면 ‘왕의 만’ 또는 ‘왕의 작은 해변’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필자가 시음한 2023 빈티지는 품종별로 양조를 따로 한다. 템프라니요는 일반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된 반면, 시라는 회전 탱크에서 두 배 이상 길게 침용 발효시켰다. 색상과 향신료 풍미를 높이기 위한 기술적 선택인 듯 한데, 이는 곧 색상 테이스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대보다 진한 적보랏빛이 아름다운 와인이며, 검은 베리 과실형이 좋고, 산뜻하며 싱그러우면서도 달큰한 감미가 전해지는 향이다. 상쾌한 산미와 신선한 과일, 부드러운 질감, 적절한 알코올, 존재감을 다소 드러내는 타닌, 볏짚단과 민트, 감초 풍미가 입문용 와인의 품질 단계를 넘어서는 놀라움을 전해 준다. 시음의 마지막에 단맛이 올라오면 아이스버킷을 활용해 시원하게 마시자. 파도가 조용히 철썩이는 왕의 작은 해변을 상상하며... 한 여름 밤에 가벼운 초리소 샤퀴트리 안주 접시와 올리브, 치즈, 말린 토마토 꼬치 핀 초스가 있으면 최고의 만찬이리라~! 2023 루카 마로니 95점, 2023 문두스 비니 Sviler 상을 수상했다.

엘 마소
펠라 창업자 토마쏘는 4살 때부터 와인을 알았고 접했다. 가족의 축제 때 사용할 와인을 만들 때 할아버지를 돕곤 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해줬던 말과 비법들을 주의 깊게 들었고, 당시 할아버지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El Maso 망치’였다. 토마쏘의 열정과 단단함을 간파한 멋진 별명은 이제 그를 닮은 와인에 붙여졌다. 해발 1090m의 고지
에 위치한 포도밭은 석회암층 위로 형성된 산화철이 풍부한 붉은 토양으로 구성돼 있다. 60년 이상된 올드바인 가르나차 틴토레라(Garnacha Tintorera) 품종 100%로 생산됐다. 프랑스에서 ‘그르나슈’로 통하는 ‘가르나차’까지는 알아도, ‘틴토레라’는 수준급 애호가들만 아는 용어일 것이다. 일반 가르나차 와는 다소 다른 독특하고 인상적인 품
종이다. 대부분의 포도는 껍질은 검붉지만 과육은 무색이다. 하지만 틴토레라는 ‘과육까지 붉은(Teinturier)’ 품종 중 하나로, 아주 진한 색을 지닌 와인을 만들 수 있다. 25일 동안의 장기 침용을 거친 후, 미국산과 프랑스산 오크통 에서 12개월간 숙성했다. 필자가 시음한 2018 빈티지는 8년이 지났음에도 와인 색상은 매우 짙은 자주빛으로, 보랏빛과 갸닛 뉘앙스가 잘 조화된 멋진 색상이었다. 블랙베리와 블랙 체리, 농익은 자두, 정향과 후추, 계피와 달콤한 감초 등 향신료 향이 풍성하고, 후반부에는 삼나무, 토스트, 다크 초콜릿, 모카 크림 향에 흙내음과 가죽향이 매혹적으로 코를 자극한다, 알코올 15.5%vol의 풀 바디에 구조감이 강하고, 타닌은 풍부한 편이며 숙성 잠재력도 좋다. 가벼운 레이트 보틀드 빈티지 포트(LBVP)를 연상시키는 쾌락적 와인이다. 추천 음식으로는 그릴에 구운 양고기, 캠핑장에서의 바비큐 요리, 만체고 등 진한 스페인 치즈, 스페인 소시지 치스토라나 초리소 등과 잘 어울리겠다. 2023 Moundus Vini 금상, 2023 베를린와인트로피 금상, 2022 프랑크푸르트국제트로피 금상을 수상했다.